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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100년 전 살인사건 -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
    • 김호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20-09-11

    <b>100년 전의 살인사건 보고서 ‘검안(檢案)’<BR>사회적 일탈의 현장에서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엿본다! </b><BR><BR>100년 전 조선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을까? 그리고 그에 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이를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살인사건 보고서, ‘검안(檢案)’이다.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조사관이 현장에 출동하여 시신을 검시하고 관련자들을 취조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100년 전 살인사건》은 바로 이 살인사건 보고서 ‘검안’을 통해 100여 년 전 조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그 수사과정을 살피는 것은 물론, 살인이라는 사회적 일탈의 틈새에 묻어 있는 민중의 삶을 들여다본다.<BR>검안에는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남편, 사람을 죽이고도 여우를 때려잡았다는 양반, 아이를 납치해 간을 빼먹은 나환자, 사위를 살해한 딸을 제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친정엄마 등 불륜과 폭력, 살인 같은 사회적 일탈 행위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들로 가득한 기록의 틈새에는 조선시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기쁨과 슬픔, 놀라움과 두려움이 묻어 있다. 죽은 자와 죽인 자의 부모와 형제, 이웃 들이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안에 담긴 100년 전 조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조선사회의 생생한 ‘일상’을 만나보자.<BR><BR><b>1. 김호 교수, 조선시대 법의학 연구의 문을 열다<BR>- ‘검안’ 연구와 새로운 역사학에 대한 기대 </b><BR><BR>검안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검시하고 작성한 시체 검사 소견서, 즉 법의학적 판결문인 ‘시장(屍帳)’과 사건 관련자 심문 기록인 ‘공초(供招)’를 포함한 일체의 살인사건 조사 보고서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검안은 2천여 책에 달하고, 사건으로 치면 대략 500여 건이다. 대부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즉 100여 년 전에 작성된 기록들이다. <BR>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역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였지, 부인이나 남편을 살해하고 한 장의 진술 공초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린 김씨 부인이나 옆집 이씨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김호 교수는 국가 기록이나 정치가나 경세가 들이 남긴 문집이 아니라 범죄 사건의 진술 기록을 사료로 삼았다는 점에서부터 차별적인 역사 연구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BR>김호 교수는 역사학계에서는 드물게 조선 시대의 의학사를 연구에 발을 들였고, 그와 관련된 조선의 과학과 사회를 연구하던 중 법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여 년 전 규장각 서고에 보관된 ‘검안’을 읽으면서 조선사회의 범죄와 그에 따른 처벌 등에 관심을 갖고 법치와 덕치, 정치와 윤리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해온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BR><BR>기억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100년 전의 소민들도 지금 우리들 각자가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에 필자는 앞으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필부필부의 증언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할 생각이다. 한마디로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씨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것이다. -<프롤로그>(13쪽) 중에서 <BR><BR><b>2. 조선시대 과학수사의 현장을 만나다<BR>-우리가 미처 몰랐던 조선 법의학의 실상</b><BR><BR>조선시대 살인사건은 어떻게 수사하고 판결했을까?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의 수사 기록을 이 책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BR>100여 년 전에도 살인사건 조사과정에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심문과 용의자의 자백도 중요했지만 법의학 증거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시체를 검시하여 사인 분석에 참고했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는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하면서 법의학 지식도 함께 발전했다. 조선 최고의 법의학 교과서인 《증수무원록언해》에 실린 여러 가지 수사기법이 수사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BR>시체는 사건 발생 지역에 그대로 두고 검시했고, 부패가 빠른 여름철에는 신속한 조사를 위해 조사를 맡은 지방관의 출발과 도착 일정까지 상세히 보고했다. 살인사건은 통상 두 사례의 조사를 실시했는데 초검관과 복검관은 각각 조사를 지휘하고 상부에 보고했으며, 1‧2차 조사의 내용이 같으면 사건을 종결했지만 의심이 가는 경우라면 3차 혹은 그 이상의 조사를 실시했다. <BR>한편, 검안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검시 보고서 ‘시장’은 시체 상태에 대해 매우 상세히 묘사, 기록하고 있어서 당대 검시 방법이나 법의학적 지식은 물론 의복 등 민중들의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BR>이런 연구의 결과는 드라마 〈별순검〉(2007~2010)에도 반영돼 대중에게 선보였다.<BR><BR>조선시대의 검시는 지금처럼 시체를 해부하는 게 아니라 시체의 외상과 색(色)을 주로 살폈다. 사인에 따라 외상의 모양이나 색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미 시체가 부패하여 검시가 불가능하거나 사대부 부녀자들의 경우처럼 시친(屍親, 죽은 사람의 친인척)이 죽은 사람을 두 번 욕보인다고 여겨 면검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검시를 생략하거나 시친의 면검 요청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살인사건이 관청에 접수되면 조사관은 아전들을 대동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사건현장을 찾아 시체가 놓인 장소를 세밀하게 묘사한 후, 시체의 옷가지를 하나씩 벗기면서 시체의 상태를 기록했다. -<프롤로그>(16쪽) 중에서 <BR><BR><b>3. 조선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로 되살아나다 <BR>-역사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지 못한 수많은 소민의 이야기를 찾아서</b><BR><BR>검안에는 ‘시장’과 함께 오늘날의 녹취기록에 버금가는 취조기록인 ‘공초’가 실려 있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심문했는데, 아전들이 모든 진술을 구어체 그대로 기록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당대의 많은 소민의 목소리가 아전의 손을 빌려 생생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BR>검안에 전하는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양상을 살펴보면, 강도나 절도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검안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히 여성(혼자 사는 과부, 외지에서 왔거나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기식하던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물론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장 내밀한 사회집단인 가정 내에서도 발생했다. 살인으로 비화된 폭력은 개인 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향촌의 양반 가문, 계나 두레 같은 평민들의 상호 부조 조직 등 다양한 이익 집단들 간에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BR><BR>1904년 5월 15일, 경상북도 문경의 군수 김영연은 관할지역인 신북면 화지리에 사는 양반 안도흠의 소장을 받았다. 하루 전인 5월 14일 이웃에 사는 상놈 정이문이 저녁에 몰래 집에 들어와 며느리 황씨를 겁간하려다가 아들 안재찬에게 발각되자 도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안도흠은 반상의 구별이 엄격하고 남녀의 유별이 분명한데 어찌 상놈이 반가의 여성을 겁탈할 수 있냐며 도주한 정이문 대신 그의 조부라도 체포하면 손자가 관아에 자수할 것이니 이를 기다렸다가 처벌해달라고 군수에게 요청했다. … 그런데 취조과정에서 정태극은 자신의 손자가 이미 안도흠의 며느리 황씨와 5년 이상 불륜관계를 맺어왔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상놈 집에서 목을 맨 반가의 여인>(30-31쪽) 중에서<BR><BR>조선 후기에 양반이 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박지원은 진정한 양반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정 약용은 모든 사람이 양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양반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양반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양반이려면 ‘양반다움’을 갖추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그 지위에 걸맞은 품격과 책임감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였다. … 충청남도 면천군 송암면 엄치리(현재 죽동리)에 기거하는 양반 조태원(19세)은 동네에서 소문난 난봉꾼이었다. 심지어 그에게 술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조태원은 행동을 조심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문의 권세를 믿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사람이 아니라 여우였다>(65-66쪽) 중에서 <BR><BR>‘의옥’이란 ‘의심스러운 살옥사건’을 말한다. 조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번복되거나 용의자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근거가 사라지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나타나면 ‘살인자는 목숨으로 갚는다’는 살인자상명의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 살인사건이라 해도 의옥이 되면 용의자를 정범으로 특정하여 사형에 처하는 대신 속전을 받고 방면했다. 이는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심리한다는 흠휼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신은 도리어 사건을 의옥으로 만들어 처벌을 피하려는 악의에 이용되곤 했다. -<의옥의 발명, 향촌의 권력자들>(85쪽) 중에서 <BR><BR>1899년 겨울, 전라북도 남원군 남생면에서 하루 사이에 두 사람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김판술의 여섯 살배기 아들 김왜춘과 이웃에 사는 마흔세 살 이여광이었다. 발견 당시 두 사람은 모두 배가 갈린 채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었다. 모두가 경악할 만한 참혹한 죽음이었건만, 이 일로 관의 문턱을 넘은 사람은 없었다. -<복수는 나의 것, 용천뱅이의 비극>(166-167쪽) 중에서 <BR><BR><b>4. ’만인의 군자화’, 사람답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다 <BR>-조선 후기 사회에 휘몰아친 유교의 가치 </b><BR><BR>검안 속 소민들의 진술과 증언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김호 교수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100년 전 조선 사람들의 ‘망딸리떼’와 문화의 심층을 읽어낸다. 그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자를 욕망하라’는 정조의 ‘소민군자론’이 끼친 영향과 성리학의 세속화에 주목해야 한다. <BR>성리학의 군자론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덕적인 삶을 추구할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민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서 도덕적인 삶이란 곧 인간다운 삶이었다. 이들은 인간답고자 하는 명예심으로 충만했다.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소민들의 의지는 정조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난 19세기 말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더욱 확대되었다.<BR>성리학의 가치관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거의 모든 인민의 마음속에 ‘감정의 체제’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필부필부는 ‘인간의 조건’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리학의 군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하층민들, 특히 여성들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욱 강한 열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BR><BR>김조이의 친정어머니는 남편을 섬기는 여성이어야 비로소 사람답다고 하는 지배이념의 신봉자였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그래서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었던 딸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고, 그런 딸을 친정어머니는 용서하지 않았다. -<남편을 죽이고 어미의 손에 죽다>(184쪽) 중에서 <BR><BR>강진에 살았던 김은애는 1789년 자신이 음탕하다는 소문을 퍼뜨린 노파를 여러 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후 관아에 자수했다. 그리고 이를 본 모든 사람이 그녀의 정렬(貞烈)을 장하게 여겼다. 당시 강진현감 박재순 역시 정상을 참작하여 그녀를 풀어주려고 했다. 다만 인명을 살상한 죄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잠시 옥에 가두었다가 이듬해 6월에 은애를 석방했다. … 과연 사람을 죽이고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있다’는 것이 조선시대의 법 감정이다. -<이중의 질곡, 추문에 휩싸인 여성들>(204-205쪽) 중에서 <BR><BR>19세기 말 동학농민군은 ‘의로운 폭력’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학조는 바로 그 ‘의로운 폭력’을 행사하는 농민군의 이름으로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조용하에게 복수했다. 과연 의로운 폭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조용하의 아들 조윤태는 이학조를 난타하여 살해한 뒤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의의 폭력을 휘두른 것이라 항변했다. 정부는 도리와 인정을 참작하여 사형 대신 ‘장 60’에 처하는 것으로 그의 항변을 받아들였다. -<의로운 폭력, 인간다움을 포기한 대가>(321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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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결국 이기는 사마의
    • 친타오 지음, 박소정 옮김
    • 더봄
    • 2019-12-02

    ★중화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마의 대중교양서’의 결정판★중국 CCTV 인기 강연프로그램인 ‘법률강당’ 화제의 강의 《결국 이기는 사마의》는 사마의의 일생과 위대함에 관해 기술한 가장 완전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 친타오가 중국 CCTV의 인기 프로그램인 ‘법률강당’에 출연해 강연을 하면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중화권에서는 ‘사마의’에 관한 대중 교양서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저자는 “사마의를 가이드 삼아 약 100년에 걸친 한나라 말기 삼국의 완전하고 진실한 역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며 쓴 책”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사마의에 의한’ 제대로 된 삼국시대 역사의 재구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 한 권을 독파하면 사마의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와 관련해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물론이고 사마의가 등장한 이후부터 삼국시대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마의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던 사람들, 《삼국지》에 국한되지 않고 정사나 기타 사료를 반영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다.조조를 능가하고 제갈량에 못지않은 전략가 사마의의 인생!사마의는 동한(東漢)의 말단 관리부터 시작해서 조위(曹魏)의 최고 대신의 자리에 올랐고, 서진(西晋)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비록 역사상 심각하게 저평가된 모사가이자 정치가이지만, 중국 역사상 조조의 뒤를 이어 무공으로 현요한 자리에 오른 효웅이다. 근래 들어서는 사마의에 관한 드라마나 TV 강연프로그램이 이어지면서 삼국시대 최후의 승리자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그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마의를 재조명한 중국 드라마인 가 작년에 국내의 한 케이블 채널에서 처음 방영된 이후 올해 속편인 까지 방영되며 ‘사마의’라는 이름이 수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삼국지》를 좋아하는 남성들에게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이 책은 저자 친타오가 중국 CCTV의 인기 프로그램인 ‘법률강당’에 출연해 강연을 하면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다. 중화권에서는 ‘사마의’에 관한 대중 교양서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저자는 “사마의를 가이드 삼아 약 100년에 걸친 한나라 말기 삼국의 완전하고 진실한 역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며 쓴 책”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사마의에 의한’ 제대로 된 삼국시대 역사의 재구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결국 이기는 사마의》는 사마의의 일생과 위대함에 관해 기술한 가장 완전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 한 권을 독파하면 사마의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와 관련해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물론이고 사마의가 등장한 이후부터 삼국시대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마의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던 사람들, 《삼국지》에 국한되지 않고 정사나 기타 사료를 반영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다.사마의에게 배우는 난세의 생존철학과 승리하는 비결!사마의에 관한 책은 그동안에도 많았다. ‘삼국지’로만 검색해도 수천 건이 넘는 데다 제갈량을 다룬 서적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정작 사마의를 전면에 내세운 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마저도 사마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췌해 그 속에서 교훈을 얻거나 관리학의 각도에서 처세의 비법이나 책략을 배우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사마의의, 사마의에 의한, 사마의를 위한 책이다. 그중 사마의를 위한 책이라고 한 것은 그동안 제갈량에 비해 부정적으로 평가된 사마의를 위해서 저자가 변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 대부분이 사마의의 인품과 덕성을 비난하며 그를 폄하하지만, 사실 사마의가 했던 모든 행동들은 전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거라며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사마의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음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기보다는 철저히 사마의라는 인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사건과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지루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마의라는 인물의 성격(인성)을 형성한 배경부터 그가 살아온 인생 전반을 아우르며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따라서 사마의가 주인공인 한편의 대서사시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점이 바로 사마의를 다룬 여느 책들과 이 책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 친타오는 중국 삼국시대의 혼란스런 정국을 배경으로, 사마의를 대표로 하는 삼국 권신 모사가들이 어떻게 조정에 섞여 들어가 자신을 도모하고 세상을 바로 세우며 심리전으로 승부를 겨루는지 등을 흥미진진하게 정리했다. 따라서 독자는 사마의를 통해 난세의 생존 철학을 살펴보고 개인의 생활상을 꿰뚫어보며 융통성 있는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마의』에 쏟아진 찬사!사마의는 결코 신하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_조조사마의는 용병에 능하고 귀신같이 변화한다_손권웅대한 전략과 뛰어난 책략으로 언제나 승리하였다_당태종 이세민사마의는 조조보다 몇 배 뛰어난 대단한 인물이다_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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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골목길 근대사 - 정동에서 부산까지 1887~1950
    • 최석호.박종인.이길용 지음
    • 가디언
    • 2019-12-05

    골목길에서 만나는 근대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며 역사를 산책하다매년 추위가 채 가시기 전 2월 8일이면 광화문 네거리에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와 연인들의 가슴을 적신다. 이문세 씨가 부른 명곡 ‘광화문 연가’다.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황후의 정릉이 있던 곳을 후세 사람들이 정동이라 불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왕조 600년 도읍지의 권력 중심부로 영욕의 시간을 지나온 정동은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버텨낸 격동하는 근대사의 주역이자 현장이었다. 나라를 넘겨준 ‘을사늑약’ 조약을 체결한 ‘중명전’, 임금이 왕궁을 버리고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친 ‘아관파천’의 현장 러시아공사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해방 후 안두희의 총탄을 맞아 비명에 가신 김구 선생의 ‘경교장’, 그리고 구한말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주역 외국 선교사와 외교관들의 주 무대가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이처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다정히 걷고 있는 연인들의 눈앞에,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정동교회 바로 옆 카페에, 서대문에서 광화문에 이어진 빌딩 숲 사이에, 정동에는 역사의 영광, 분노, 좌절,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걸 《골목길 근대사》의 저자들은 제법 진지하게 안내하고 있다. 늘 지나다니던 길, 이제 저자들의 안내를 따라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보는 역사산책을 해보자. 역사가 무겁다면 매년 2월에는 한번쯤 덕수궁 돌담길이 끝나고 미국 대사관저가 시작되는 분수대 사거리 오른쪽 노점상에 둘러싸여 있는 비석 앞에서 ‘광화문 연가’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 비석이 바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곡가 겸 작사가 이영훈을 기리는 작은 청동 기념비다. 격동하는 근대사의 현장 정동, 조선중화의 아픔이 서린 서촌, 일제의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동산, 조선 최초 자주적 개항 목포, 더블어사는 지혜를 품은 국제도시 부산, 치유와 사랑의 섬 신안 증도까지 역사를 걷다 《골목길 근대사》는 급변하는 현대에 점점 희박해지는 역사 인식을 일깨워 대한민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되찾아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최석호, 박종인, 이길용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이들은 ‘역사산책’이라는 콘셉트가 자칫 무거운 역사지식 전달에 치우쳐 산책이 주는 재미를 놓칠 것을 우려해 수위를 조절하는 데 애를 썼다. 자유여행과 역사해설의 중간쯤, 역사를 만나 사유하고 걸으며 ‘나’에게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골목골목 이 땅에 서려 있는 우리 역사를 걸으며 그 역사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나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력하게 국권을 침탈당한 근대사의 아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정동,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인 조선중화가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서촌, 그리고 나라 잃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힘든 시절을 살아 견디어내고 마침내 되찾은 나라에서 문화보국을 위해 힘쓴 동산, 한 많은 민초들의 삶을 흥과 예로 승화해낸 개항장 목포의 눈물, 청관거리, 왜관거리의 전통이 남아 피난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품은 국제도시 부산의 개항장, 사랑으로 용서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을 신앙심으로 이겨낸 천사의 섬 신안 증도까지 저자들의 발길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과 진실을 전하는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잰걸음을 걸었다. 우리는 순서에 구애됨이 없이 이 책에 소개된 어느 골목길을 가든 거기에서 만나는 역사와 반갑게 조우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걷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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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 배한철 (지은이)
    • 매일경제신문사
    • 2021-01-20

    한국사 명장면을 장식한 대한민국 대표 국보 47점!아름다운 우리 국보로 한국사를 다시 만나다시대의 정점에서 꽃피운 대한민국 대표 국보 47점!파란만장 한국사를 만나는 가장 흥미로운 안내서한 시대의 정점에서 탄생한 국보. 국보는 수많은 역사의 진실과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 바로 옆에 살아 숨쉰다. 백제 금동대향로,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고려청자,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대한민국 대표 국보임에도 제작된 이유,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이자 문화재 기자인 배한철은 수시로 박물관을 오가고 유적지로 부지런히 발품을 판 끝에 얻은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국보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발굴했다. 국보는 먼지 폴폴 날리는 창고 속 골동품이 아닌 우리 선조가 거쳐 온 삶의 자취이자 역사적 징표임과 동시에 파란만장한 한국사의 면면을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매개체다. 저자는 다수의 역사서와 고문헌을 집약하여 간판급 국보 47점을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국보가 제작되었던 당시의 뒷이야기부터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사라질 뻔한 아찔한 수난사, 무심코 흘려보낸 국보 속 한·중·일 문명 교류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종횡무진하며 상세히 풀어낸 역사적 현장과 함께 국보의 진면목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학생부터 성인까지, 한국사의 문을 두드리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47점의 국보와 함께 떠나는 한국사 여행역사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국보를 통해 만난다면 한국사의 핵심 명장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한 시대의 공력이 집결되어 탄생한 국보에는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330여 점의 국보 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7점을 선별하여 꼭 알아야 할 한국사의 면면을 단 한 권으로 압축했다. 이번 책은 기존 역사책의 고리타분함에서 과감히 벗어나 국보와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국보 발굴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하기도 하고, 국보가 제작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국보에 숨겨진 옛 사람들의 색악과 관점까지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석굴암 본존불은 왜 일본을 바라볼까, 다보탑을 지키던 돌사자상 세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서역풍 불상은 왜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엉뚱한 곳에 거대한 탑이 세워진 까닭은 무엇일까 등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했던 사건도 국보라는 주제로 만나면 역사의 한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듯 선명하다. 국보에 얽힌 역사적 비밀을 뒤쫓으며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국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번 책은, 한국사를 이해하는 폭을 한껏 넓혀줄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도판, 생생한 현장감국보는 전체 모습도 아름답지만 세부를 들여다보면 더욱 정교하고 유려하다. 이번 책에서는 여러 명작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국보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디테일까지도 섬세히 전달하여 한국의 새로운 멋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국보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기고 애정이 샘솟는다.지금까지 거의 공개된 바 없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국보 사진을 다수 수록하여 국보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것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무너지기 직전의 불국사와 미륵사탑, 사람들이 잔뜩 올라가 있는 첨성대, 곡식 말리는 탑평리 7층 석탑, 관리가 안 되어 풀이 무성하게 덮여 있는 일제강점기의 경복궁 근정전 사진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국보의 모습에 과거의 필터를 덧씌워 국보가 살아낸 장구한 역사를 아주 현실감 있게 전한다. 수록된 도판은 온갖 풍상의 흔적을 간직한 국보의 처연함과 그러한 세월을 지나오기까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등 복잡 미묘한 감정까지도 불러일으킨다.문화재 전문 기자의 균형 잡힌 시각을 만나다저자 배한철은 2011년부터 문화재 기자로 현장을 누비며 좀 더 흥미롭게, 대중과 가까이에서 역사를 전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왔다. 고문헌과 역사서를 뒤지고 전국 유적지 구석구석을 답사해온 그의 경험은 칼럼과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의 책은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으로 역사와 문화재에 관한 충실한 설명을 제공한다. 초상화 속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읽어낸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고전 문헌 속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본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교양 역사서를 다수 집필했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국보다. 저자는 국보 신고와 보상금, 국보 지정 번호의 의미와 문제점, 보수와 복원 문제, 국보의 가격 등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문제까지 폭넓게 담고자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던지는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골동품이 아닌, 역사의 징표이자 새로운 시대의 창조적 원동력으로서의 국보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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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 김경민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0-09-11

    <b>우리나라에 꼭 있어야 하는 역사책 <BR>문화재 약탈부터 반환을 둘러싼 세계적 논쟁까지 <BR>문화재사 연구자가 꼼꼼하게 분석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다</b><BR><BR>문화재 개념의 등장부터 오늘날 반환의 어려움까지 문화재 약탈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망한 역사 교양서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문화재 반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부터 매우 중요한 국제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이집트·그리스·인도·한국과 같은 원산국은 문화재 반환을 통해 국가의 재건에 노력하는 한편, 영국·프랑스·미국·일본과 같은 시장국은 문화재 보존과 국내법 등을 이유로 소유권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다.<BR>이 책은 영국이 처음 약탈한 인도의 「티푸의 호랑이」,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아시리아 유물을 밖으로 반출한 과정,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중국 돈황의 『금강경』 약탈 사건, 그리고 프랑스로부터 대여받은 한국의 외규장각 의궤 등 다양한 사례와 영국 외무부의 실제 사료 등을 통해 문화재 약탈의 역사와 국제 사회의 논쟁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 문제의 본질을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 경제적 가치 등 다양한 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문화재를 어떻게 향유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발전적으로 모색한다.<BR><BR>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우리의 실정에 김경민 같은 전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BR>―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前 문화재청장, 명지대학교 석좌교수)<BR> <BR><b>문화재사 연구자가 친절하고 쉬우면서도 예리하게 분석한 <BR>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b> <BR> 영국의 영국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에는 왜 타국 문화재가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을까?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시장국은 문화재를 훔쳐간 것에 대해 사과는커녕 소유권까지 주장하는 걸까? 거기에 되레 자신들 덕분에 문화재가 보존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BR> 문화재는 과거의 유물로서뿐 아니라 한 국가와 민족의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구축하는 시각적 물질 유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제국의 시대가 끝난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과거 열강과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 사이에 문화재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집트·그리스·에티오피아·이란·인도·한국 같은 원산국(country of origin, 문화재의 원소유국)은 문화재 반환을 통해 아픔의 역사를 딛고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킨 뿌리 깊은 민족으로서 국가의 재건에 노력하는 한편,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과 같은 시장국(market country, 과거 제국으로 현재 약탈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으며, 유물 구매력·자본을 가진 국가)은 자신들의 약탈사(史)를 인정하지 않고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도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의 당사국으로서 오랫동안 이 문제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약탈 문화재가 국내로 반환된 사례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BR> 이유가 무얼까? 문화재 반환 논쟁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단지 빼앗기고 빼앗은 문제가 아닌 역사적 배경·사회적 의미·경제적 가치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논의도 모두 문화재의 역사로 수합되고 있으니, 역사적 기원을 모르고 문화재 문제를 논하는 것은 기초 공사 없이 건물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문제가 왜 발생하였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 열쇠라고 할 수 있다. <BR><BR><b>세계사에 숨겨진 문화재 약탈의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BR>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강국의 논리를 세밀하게 파헤치다</b><BR> 이 책은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이 맞다 틀리다 하는 이분법적 구도나 감정적 호소가 아닌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놓인 반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원산국의 약점과 시장국의 논리적 허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시장국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법률적·역사적·국제사회적·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재를 어떻게 향유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모색했다. <BR> 제1부에서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살펴본다. 역사적 사례를 다양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서구 열강의 해외 문화재 수집 행위가 명백한 약탈이었음을 밝히고, 이 시기에 행해진 수집의 역사를 서구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의 연관 관계 속에서 재구성한다. 이 책은 약탈국에 대한 논의의 범위를 영국으로 한정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문화재 약탈 양상의 시대적 변화와 각각의 사례를 보다 심도 있게 고찰하기 위해서다. 영국은 과거 어떤 열강보다도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던 만큼 오늘날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해외 문화재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문화재 반환 문제와 얽혀 있다. <BR> 제2부에서는 제국 시대 이후를 이야기한다. 영국을 중심으로 오늘날 열강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영국이 1945년 이후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로부터 제기된 문화재 반환 요청에 실제로 어떻게 대응했으며, 어떤 근거로 반환을 거부해 왔는지 검토한다. 특히 영국의 대응과 거부의 근거를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특정 시기에 작성된 영국의 정부 문서를 제시한다. 저자는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영국외무연방부 문서와 영국도서관 등에서 조사한 자료를 인용한다. 외무부 자료는 대개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의 것인데, 이는 국가정보 보호 절차에 따라 25~30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살펴본 자료는 대개 2000년대 중후반에 일반에 공개된 것으로, 영국의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 기초하여 실제로 영국이 내세운 근거와 거기에 내재된 반환 불가의 담론을 명확히 추출해 낸다. 또한 19~20세기 초 영국의 신문기사를 분석하여 당대 영국인들의 문화재에 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영국의 눈에 비친 동양 문명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BR>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촉구하고 문화재의 불법 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유네스코를 주축으로 몇몇 주요 국제 협약들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반환 문제들이 국제법을 통해 해결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리가 아닌 역사적·도덕적 차원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합의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기존의 법률이나 이념적 차이에 대한 인식을 넘어 문제의 역사적 근원이 현실적 쟁점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지 분석했다. <BR> <BR><b>약탈 문화재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BR>색다른 문제 제기와 현실적 해결책을 모색하다</b><BR> 명확한 역사적 사실과 그에 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재 반환 문제의 포괄적 이해는 문화재의 소유를 정당화하려는 시장국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반환을 주장하는 원산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협상 요소다. 맹목적 민족주의를 고운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 요즘, 열강에 의해 문화재를 수탈당한 약소국으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피해자라는 도덕적 우위만을 근거로 한 문화민족주의적 주장으로는 다양한 쟁점이 중첩된 문화재 반환 문제를 더는 유리하게 끌어갈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시장국은 복잡한 역사 관계 속에서 오늘날 문화재의 원소유주가 여러 국가로 나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화재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서 최선의 환경과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문화재를 원소재지로 복귀시키는 것보다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전시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볼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순수하게 선의만을 근거로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화재 반환을 원하는 원산국은 약소국에 주어지기 마련인 단순한 동정론에 머무르지 말고, 소유권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BR> 이 책은 오로지 원산국에 반환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처럼 식민 지배와 수탈의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민은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것이 도덕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당연하며, 반환하지 않는 시장국이 나쁘고 옳지 못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반환하지 않는 국가는 옳지 않고, 반환받으려는 국가는 정의로움을 대변하고 있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문화재 반환의 어려움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 주려 했다.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왜 반환받아야 하는지, 반환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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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 오늘 만난 고양이, 어디서 왔을까?
    • 바다루 (지은이)
    • 서해문집
    • 2021-06-04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나 인기척에 깜짝 놀라 달아나는 고양이도 있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냥’ 하며 몸을 부비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 번쯤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한국에 사는 고양이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 머무르게 되었고 어떻게 공존해 왔을까.《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는 묘연했던 한국 고양이들의 내력을 낱낱이 들려준다. 어디를 거쳐 이 땅에 왔는지,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는지, 어쩌다 도시를 떠돌게 되었는지, 다른 나라 고양이에 비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는 그 역사적 맥락을 밝힌다. 한반도 최초의 집사 이규보의 검은 고양이숙종의 퍼스트 캣 금손, 묘마마와 동네 고양이들뚱보 공 이재순을 기절시킨 개화기의 아깽이까지K-고양이와 한국인의 파란만장 묘연 이야기고양이가 본래 외래종이어서인지, 우리나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이집트·유럽·일본 등 세계의 고양이와 아울러 짤막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 책은 그렇게 생략되고 흩어져 있던 한국 고양이의 생기발랄한 발자국을 섬세하게 발굴하고 성실히 모아 만든 연대기다. 꼼꼼한 조사로 찾아낸 풍성한 사료들 속에서 고양이들은 정몽주의 스승 목은 이색, 환국정치로 대신들을 쥐락펴락한 숙종 등 한국사의 유명인들도 그저 한 명의 ‘집사’였음을 보여 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신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를 데려가려다 망신당한 양녕대군, 고양이만 돌보지 말고 시가에도 신경 쓰라는 친정아버지 효종의 편지를 받은 숙명공주의 일화, 찬양에 가까운 이규보와 성현의 고양이 시는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양이의 유구한 매력을 가늠하게 한다. ‘고양이’라는 말의 변천, 턱시도·치즈·삼색이의 옛 이름, 지금과 다른 캣닙 사용법, 전통적인 고양이상, 조선의 캣맘 ‘묘마마’ 등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흔적들을 발견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 그림과 사진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가 고양이를 바라볼 때,고양이는 자기가 겪었던 수많은 인간의 영혼을 고스란히 비춰 준다”독자들은 조상 집사들의 주접에 키득거리다가도, 한국 고양이의 신산한 삶에 비친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고양이와 인간이 지혜롭게 공존해 나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저마다 다양한 욕망을 덧씌웠다. 학자는 자신이 믿는 우주의 작동 방식을 근거로 고양이를 설명했고, 의사는 고양이와 다른 사물의 상호작용에서 의학적 영감을 얻었다. 선비는 각자의 본분에 충실할 것을 고양이에 빗대 강조했고, 백성은 장수와 건강에 대한 염원을 고양이 그림에 담아 걸었다.”(218쪽)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에게 구구한 억측과 과장, 미신을 덧씌워 요물로 간주하고 저주의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코로나처럼 전 세계를 휩쓴 콜레라 시대에 고양이는 액막이를 하려는 인간들의 위협을 받았으며, 도시에 밀집한 인구로 인해 늘어난 쥐를 잡기 위해 동원되었다가 쥐가 줄자 오히려 쥐약의 목표물이 되었다. 고작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이유다. 고양이를 향한 인간의 깊은 애정과 한없는 잔혹함이 교차하는 한국 고양이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동물에게 쏟는 다정함이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과 기꺼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 이 책이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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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 임상혁 (지은이)
    • 역사비평사
    • 2021-03-22

    “저는 계집종이 확실합니다.”1586년, 나주 동헌에서 한 여인이 스스로 노비라 주장한다분쟁과 갈등,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은 인간사회에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조선시대 인간사회의 생활도 다르지 않아서 각종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노비소송이 많아서 조선 전기에는 임금이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 신분제 사회에서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명문대가의 경우 얼마나 노비를 거느리고 있는지에 따라 부의 척도를 가늠했다. 노비는 평생 상전에게 신역을 바쳐야만 하는 고달픈 신세이고, 그 신분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그러니 노비는 누구라도 벗어나고픈 신분의 굴레이자 멍에였다. 재산으로 취급되었던 만큼 조선시대 노비는 민사소송에서 곧잘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이 책은 1586년의 결송입안에 나타난 노비소송을 통해 조선의 법과 소송,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전통시대 노비의 신분을 놓고 다투는 노비소송은 거의 대부분 자기가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피고 다물사리라는 여인은 반대로 스스로 노비라 말한다. 반면 소송의 원고 측은 그녀가 양인이라고 강변한다.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우리들은 정정당당히 소송을 하겠습니다.”시송다짐으로 시작한 이 소송의 진실은 무엇인가?1586년(선조 19) 3월 13일, 전라도 나주 관아에서 노비소송이 벌어졌다. 송관은 학봉 김성일이다. 원고와 피고, 소송의 양 당사자는 당시 법정인 관아에 나와 “우리들은 정정당당히 소송을 하겠습니다. 원고와 피고 가운데 30일간 까닭 없이 소송에 임하지 않거든 법에 따라 판결하십시오.”라는 시송다짐을 하고 소송을 시작했다.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피고 다물사리는 양인인가 노비일까? 소송이 진행되면서 그 연유는 극적인 반전 속에 드러난다. 원고와 피고는 그해 4월 3일까지 주장과 증거 제출을 마쳤다. 마침내 4월 19일, 나주목사이자 이 소송의 송관 김성일은 판결을 내렸다.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며 그 남편이 이지도의 아버지 소유 노비인 윤필의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그 자손들도 자기 집안의 노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손 또한 노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물사리는 자기가 성균관 소속의 관비인 길덕의 딸로서 자기 자신 또한 관비라는 주장을 펼친다. 부모가 모두 천민일 경우 아버지가 사노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관비일 경우 자손들은 모계를 따라 모두 관비가 되기 때문에 다물사리는 자기 후손들을 혹독한 처우의 사노비 대신 비교적 고통이 덜한 관노비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설 때는 양 당사자의 진술만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이에 송관 김성일은 증거조사에 들어간다. 먼저 국가의 공적 장부인 호적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놓고 당사자 또는 증인을 불러 신문한다. 호적을 조사할 때는 보통의 계보 외에도, 원고의 경우 멀쩡한 양인을 자기 노비라고 호적에 올려―이를 ‘암록(暗錄)’이라 한다―압량위천(壓良爲賤)을 하지 않았는지, 이와 반대로 피고의 경우 역을 회피하기 위해 세력가나 기관에 몸을 맡기는 행위인 ‘투탁(投託)’을 하지 않았는지도 꼼꼼히 따져본다.증거조사와 증인 신문을 마치고 내린 판결에 따르면, 다물사리는 자기 자손들을 사노비에서 관노비로 바꾸려고 사위인 구지와 공모하여 성균관에 투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물사리가 양인인 경우 남편이 사노이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모두 아비의 상전인 이유겸(이지도의 아버지) 집안의 사노비가 되어야 하지만, 만약 관비라면 모계를 따라 그 후손들은 모두 관노비가 될 수 있었다. 다물사리는 금쪽같은 외손녀들(사위 구지에게는 딸)을 양인으로 만들 수야 없지만 어찌어찌 해본다면 신공을 바쳐야 할 의무도 없고 앙역의 부담도 없는 공노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암군 관아의 노비빗리와 짜고 일을 벌인 것이었다.드디어 김성일은 민사 판결로써 다물사리의 딸 인이와 그의 소생들을 이지도의 어머니 서씨 부인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하기에 이른다. 손주들을 타인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했던 다물사리의 애달픈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원고 이지도가 승소했다.법정소설 또는 추리소설식 이야기 구성조선시대 법과 소송에 관한 체계적 해설이 책의 핵심 서사는 다물사리와 이지도가 벌이는 소송이다. 소송당사자들이 다투는 문제는 다물사리의 딸 인이의 신분이다. 원고와 피고가 치열하게 맞붙어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는 법정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저자는 1586년의 결송입안을 가지고 이 현장을 생동감 있게 복원했다. 주문과 판결이유가 간단히 적시된 오늘날의 판결문과 달리 조선시대 판결서는 소를 제기하는 소지, 원고와 피고의 최초 진술, 소송당사자들의 사실 주장과 제출된 증거, 그리고 판결 등 재판의 전 과정이 기록된 덕분이다. 딱딱한 기록의 고문서를 그 시대의 말투로 바꾸어 풀고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함으로써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간다. 나주 법정에서 변론을 늘어놓는 모습, 송관 김성일의 엄격한 신문과 사실 조사를 해나가는 모습은 법정을 무대로 한 법정소설(法廷小說)과도 같다.이 책이 흥미를 돋우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피고 다물사리와 원고 이지도가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는 공방에서 어떤 이의 말이 진실일까 추리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들의 진술만 들어보면 모두 그럴듯하여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송관이 조사하는 호적을 함께 들여다보고 원고와 피고의 말을 대조해보면서 어느 부분에 모순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송 당시 다물사리는 과부이고 여든 살쯤인데 노쇠한 여인이 어떻게 대담하게도 성균관에 투탁하여 신분을 숨기고 상대편의 소송에 맞서려 했는지 의심을 품게 된다. 김성일은 이 의심을 어떻게 풀었을까? 사실 파악은 이 책의 맨 뒷부분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증거조사와 신문을 통해 밝혀 나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추리소설과 같다.그러나 이 책은 뭐니 뭐니 해도 인문역사 법학교양서로서 조선시대 신분사회제도 및 법제도에 관한 저작이다. 핵심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또 다른 소송인 미암 유희춘 집안에서 벌어진 소송을 소개하며 첩 자녀의 신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조선시대의 소송의 운영과 실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즉, 당대의 법률 용어와 소송의 절차, 법률문서, 지원 인력, 법률의 적용, 소송법서, 법전과 수교 등에 관한 설명이 지적 호기심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언중유언(言中有言)’ 코너는 전통시대와 오늘날의 재판에 관한 저자의 평을 담은 일종의 칼럼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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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나라말이 사라진 날 -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
    • 정재환 (지은이)
    • 생각정원
    • 2020-12-02

    “언어와 겨레의 운명은 하나다!”빼앗으려는 일제와 사수하려는 조선어학회의 치열한 두뇌싸움,그리고 끝내 법정에 선 한글의 운명을 다룬 역사 버라이어티어느 날 갑자기 매일 말하고 듣고 썼던 우리말을 빼앗긴다면? 한국어를 쓰면 위법이고,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를 써야 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한국인의 모어는 한국어이고, 고유문자는 한글이다. 당연히 한국어 금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있었다.『나라말이 사라진 날』은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쓰고 있는 우리말글, 이것이 당연해지기까지…… 사명으로 다듬고, 피땀으로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말글 지킴이’로 유명한 방송인 출신의 역사학자 정재환은 이 책을 통해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을 살펴본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처음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그것이 ‘한글’이란 이름을 얻기까지 우리글의 탄생 과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일제에 나라말을 빼앗기게 된 상황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편찬하고, 민족어 3대 규범을 만든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집중한다. 3장에서는 민족주의자를 일망타진하겠다는 일제의 야심으로 빚어진 조선어학회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4장에서는 해방 이후, 비로소 열린 한글의 시대를 조명하며, 학회가 사전 편찬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이룩한 감격적인 쾌거 『큰사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독립운동 하면 만세시위나 임시정부 등을 떠올리지만, 민족어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 또한 독립운동이었다. 조선어학회사건을 되짚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과 마주하는 경험이자, 우리말글이 만들어지고 성장해온 과정을 목격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조선어학회사건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건의 전모는 역사나 언어에 관심 있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형편이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루는 기초이자 토대다. 사람의 뿌리다. 그 뿌리가 짓밟혔던 치욕스러운 과거, 그리고 그 뿌리를 되살리고자 끈질기게 버티고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르고서야, 어찌 뿌리에 기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일이 가능할까.” - 본문 중에서“언어와 겨레의 운명은 하나다!”빼앗으려는 일제와 사수하려는 조선어학회의 치열한 두뇌싸움,그리고 끝내 법정에 선 한글의 운명을 다룬 역사 버라이어티2020년 10월 9일은 574번째 맞이하는 한글날이다.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그 우수성을 기리고자 제정된 국경일,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만든 사람과 반포일,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고 있는 문자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한글’이 사라졌던, 아니 빼앗겼던 시대가 있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토해내지 못한 채 대한제국은 소멸했다. 일제는 강력한 동화정책을 시행했다. 조선인을 천황의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조선의 정체성은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조선어와 조선 글자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조선 역사와 문화의 정수였다. 조선이란 존재 자체가 위협받던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우리말글 연구와 조선어사전 만들기에 전념했다. 금지된 것, 없애려는 것을 살리고 지키려는 행위는 저항이자 투쟁이었고, 일본의 국시 위반 행위였다. 조선총독부의 사찰과 회유, 압박과 통제가 이어졌지만, 학회의 활동은 흔들림 없이 지속되었다. 학회는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을 시작해 1940년까지 「한글 마춤법 통일안」,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등 ‘민족어 3대 규범’을 제정하며 조선 어문의 근대화를 이룩했다. 과연 사전을 편찬함으로써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두고, 목숨을 던져 의열단 투쟁을 전개하고, 도쿄에서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고,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수뇌와 정치인들을 폭살했지만 조선 땅에서 일제를 몰아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조선어를 정리하고 통일하고 사전을 만들어서 독립한다고? 애당초 번지수가 틀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조선어학회 회원 중 한 명인 이윤재는 사전 편찬실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말과 글은 민족과 운명을 같이한다. 일본이 조선의 글과 말을 없애 동화정책을 쓰고 있으니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글과 우리말을 아끼고 다듬어 길이 후세에 전해야 한다. 말과 글이 없어져 민족이 없어진 가까운 예로 만주족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글을 써두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해두면,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후세에 이것을 근거하여 제 글과 말을 찾아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민족운동이 되는 것이야.”“그때, 그들에게 한글은 ‘목숨’이었다”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그리고 한글의 탄생과 발달, 진화 과정을 추적하다조선어학회는 어문운동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꿈꾸었다. 학술 단체였기에 사전을 편찬하고 민족어 3대 규범을 마련하고, 잡지 『한글』을 발행하면서도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일본은 다급했다. 완벽한 동화의 실현을 위해 조선적인 것은 모조리 박멸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선 민족의 정수인 조선어를 지키는 학회를 일망타진하고자 했다. 그렇게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이 터졌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줄줄이 잡혀가면서 사전 편찬은 중단되었고, 잡지 『한글』도 발행할 수 없었다. 수난자들은 고문과 불법적인 사법행정으로 2년 넘게 생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회원 중 2명이 옥중에서 사망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회원들은 조선어에 대한 사명과 열정을 놓지 않았다. 최현배가 가로쓰기를 완성한 것 역시 옥중에서였다. 감방에는 책도 없고 종이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현배는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랜 숙제인 가로쓰기안 연구에 착수했다. 손바닥에 쓰고 살갗에 그리고 이불에 쓰고, 천장에 그리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가로쓰기안을 완성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만일 내가 끝내 옥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과연 가로쓰기안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 앞에 천우신조처럼 나타난 것은 같은 방을 쓰게 된 젊은 청년 둘이었다. 최현배는 생각했다. ‘내가 옥에서 죽더라도 이들은 살아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래, 이들에게 가로쓰기안을 가르치자!’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1932년부터 1936년 사이에 사용하던 ‘금서집’이란 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최현배의 친필 휘호가 남아 있다. 날짜가 없어 정확히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 마춤법 통일안」 제정을 전후해 활발히 전개되던 한글 강습회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폐지되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한글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족과 한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다’는 절박감에서 최현배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는 심정으로 ‘한글이 목숨’이라 썼을 것이다.그랬다. 그때 그들에게 한글은 목숨이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목숨 같은 한글을 지키고자 피땀을 흘렸고, 해방 이후 비로소 한글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35년간 강요된 일본어와 일제 교육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국어 교육의 기틀을 신속하게 마련하도록, 한글 교과서를 만들고, 한글 강습회를 열었으며, 한글전용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47년 10월 9일,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출간했다. 1957년 6권으로 완간된 『큰사전』은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본격적인 조선어사전이었고, 일제의 조선어 억압 정책에 맞서 조선어를 수호하고 보전하고자 한 민족정신의 산물이었다. 『큰사전』 완간은 자기 나라 말을 풀이한 사전 한 권조차 없다는 문화적 수치를 씻고 민족갱생의 첩경을 닦고자 1929년 사전 편찬에 착수한 지 무려 28년 만에 온갖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고 이룬 감격적인 쾌거였다.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쓰고 있는 우리말글,이것이 당연해지기까지……사명으로 다듬고, 피땀으로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이렇듯 『나라말이 사라진 날』은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쓰고 있는 우리말글, 이것이 당연해지기까지…… 사명으로 다듬고, 피땀으로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말글 지킴이’로 유명한 방송인 출신의 역사학자 정재환은 이 책을 통해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을 살펴본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처음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그것이 ‘한글’이란 이름을 얻기까지 우리글의 탄생 과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일제에 나라말을 빼앗기게 된 상황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편찬하고, 민족어 3대 규범을 만든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집중한다. 3장에서는 민족주의자를 일망타진하겠다는 일제의 야심으로 빚어진 조선어학회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4장에서는 해방 이후, 비로소 열린 한글의 시대를 조명하며, 조선어학회가 사전 편찬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이룩한 감격적인 쾌거 『큰사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독립운동 하면 만세시위나 임시정부 등을 떠올리지만, 민족어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 또한 독립운동이었다. 조선어학회사건을 되짚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과 마주하는 경험이자, 우리말글이 만들어지고 성장해온 과정을 목격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조선어학회사건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건의 전모는 역사나 언어에 관심 있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형편이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루는 기초이자 토대다. 사람의 뿌리다. 그 뿌리가 짓밟혔던 치욕스러운 과거, 그리고 그 뿌리를 되살리고자 끈질기게 버티고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르고서야, 어찌 뿌리에 기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일이 가능할까.”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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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나의 아버지 박판수
    • 안재성 지음
    • 산지니
    • 2020-01-30

    ▶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빨치산 박판수의 가족사는 6·25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해온 빨치산 박판수와 그의 부인 하태연의 일대기이다. 딸 박현희의 구술을 바탕으로 소설가 안재성이 재구성하였다. 박판수는 생존한 빨치산 가운데 최고위급인 경남도당 북부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로, 두 차례에 걸쳐 24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비전향으로 석방된 후 통일운동에 전념하였으며, 부인 하태연 역시 빨치산 활동을 같이한 부부 빨치산이었다. 현재 부인 하태연은 생존해 있으며, 박판수는 1992년 75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인텔리 사회주의자 박판수1918년 경남 진주 진성면 함양 박씨 종갓집에서 태어난 박판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경남 함양 서하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박판수는 해방과 동시에 건국준비위원회 진양군 책임자를 맡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47년에는 남로당 서하면당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미군정 규탄대회를 주도하면서 경찰의 체포를 피해 입산하여 5년 동안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 진주 인근에서는 명문고라 할 수 있는 진주공립농업학교(이후 진주농고를 거쳐 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유학까지 갔다 온 박판수는 면당위원장, 군당위원장을 거쳐 경남 도당의 고위 간부로 활동하다가 1952년 2월 토벌대의 대규모 빨치산 토벌로 체포당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10개월 동안 토벌대에 쫓긴 부인 하태연1926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하태연은 개화된 유학자를 아버지로 두어 그 시대에는 드물게 보통학교까지 졸업한 여성이었다. 17세 꽃다운 나이에 박판수와 결혼하여 남편의 영향으로 민족의식, 사회주의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 인민군 치하에서는 진성면 여성동맹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국군이 다시 들어오자 우익의 보복극을 피해 지리산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여섯 살짜리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함께 입산하게 되는데, 이후 10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토벌대에 쫒기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혹독한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결국 아이들을 맡아줄 곳을 찾아 하산하였다가 체포당하여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출옥 후에는 흩어진 아이들을 되찾아 생계를 꾸리면서 남편의 옥바라지에 힘썼으며, 1994년 범민련 부산경남연합이 발족한 후에는 통일운동에 전념하였다. 1997년에는 범민련 활동을 하다가 71세 나이로 구속까지 당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산 생활과 감옥살이, 옥바라지 등으로 몸은 고생스러웠을지언정 하태연은 지금도 자신의 삶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존경하는 네 아버지를 만나 영광스럽게 살았다. 감옥살이를 했지만 내 생애는 영광뿐이다. 나 죽거든 우리 엄마 고생만 했다고, 불쌍하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길은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길이었다. 수십 년 보따리장사를 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조금도 부끄럽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 죽거든 절대 엄마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하태연이 딸에게 들려준 말)▶ 빨치산을 부모로 둔 아이들박판수와 하태연의 딸 박현희는 누구보다도 부모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펴내는 데에도 박현희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 총알 세례를 피해 다니면서도 엄마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7살 때 엄마가 체포당해 감옥에 가면서부터는 남의집살이를 전전해야 해서 그 고생이야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지만 박현희는 항상 명랑하고 야무졌다. 반면 동생 준환은 부모 없는 아이로 자라나 거의 말수도 없고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 1960년 아버지가 잠시 출소했을 때는 고지식한 아버지와 심하게 갈등을 겪기도 하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 이념의 옳고 그름을 넘어 불행한 현대사의 한복판을 뚫고 살아온 한 가족의 역사로 읽히기를...이 책을 집필한 안재성 소설가는 이 책이 좌우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해방공간과 6·25전쟁이라는 격동의 시절을 최일선에서 온몸으로 겪은 빨치산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사상적인 측면을 동조한다기보다는 정치적 신념에 의거하여 일생을 바친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분명 의의가 있을 것이다.집필에 있어서는 고인이 된 박판수 선생이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없게 된 하태연 선생의 사상과 생애를 왜곡하거나 함부로 평가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기별로 주요 사건을 간략하게 보충하는 이외에 빨치산투쟁사나 6·25전쟁의 성격, 남북문제, 통일문제 등에 대한 필자의 견해나 감상, 등장인물에 대한 일체의 평가를 삼갔다.(서문 가운데)박판수, 하태연 부부의 장녀로 태어나 어린 나이로 지리산에서 빨치산 생활을 함께한 적이 있으며 이후로도 남북 이념대결의 고통을 함께 겪어온 박현희 씨는 처음부터 자식들이 바라본 부모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하였고, 따라서 이 책은 빨치산 투쟁사라기보다는 불행한 현대사를 관통해온 한 가족의 가족사라고 볼 수 있다.▶ 부산지역 생존 빨치산에 대한 구술정리 작업의 두 번째 책첫 번째 책은 신불산 빨치산 출신 구연철 선생의 생애사로서, 지난 5월 『신불산』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이번에 나온 『나의 아버지 박판수』는 그 두 번째 책으로서 비록 박판수 선생은 1992년에 세상을 뜨셨지만, 부인 하태연 여사는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현재 요양병원에서 요양하고 있어 구술 작업이 여의치 않아 부부의 장녀인 박현희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 재판기록, 짧은 메모, 단편적인 수기 등에 의존하여 재구성되었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빨치산들이 모두 연로하여 세상을 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빨치산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을 기록하는 일은 비어 있는 현대사를 채우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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